2010.02.07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용기가 없거나 그럴 필요가 없을 때 우리가 택하는 가장 손쉬운 길은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이를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니면, 변죽을 울리면서 어쨌건 내가 뭘 하기는 하고 있다는 수신호만 타전하며 그럭저럭 연명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특이한 기제가 발달해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268p.
(...)말들의 향연, 말들의 소용돌이, 의미없는 증오와 분란, 행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동의와 깨달음, 나는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268p.
이 거대한 잡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정신이나마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나는 소박한 결론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을 끄는 것이다. 그래서 한물간 유행처럼 비치는 독서 소모임을 만들고 여기에 애를 쏟아 붓는 선생님들이 고맙고, 할 수 있는 한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분들이 고맙고, 제 방식대로 묵묵히 이 세상에 행동으로 저항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내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더러 계신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분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제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끼는 것, 느낀 만큼 행동하고, 행동한 만큼 사색하는 존재가 되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270p.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잡담의 제국' 중에서
책 읽다 요즘 하고있는 생각을 만나다.
인터넷에 대해 말하자면 막연하게 '가능성'을 믿고자 하는. 긍정적인 상상력을 열어두고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당장 나를 돌아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적어도 내게는. 인터넷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그런 것이 맞더라.
말들, 글들을 탭과 탭 윈도우와 윈도우를 오가며 클릭질로 섭렵하고 또 말들을 즉각적인 반응들을 뱉어두고 내 생각, 내 말이라고 착각하고, 심지어 온라인 분향소에 댓글 하나 다는 것이나 온라인 후원 버튼을 기꺼이 눌러 폼을 채우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위안하지 않았나.
1년 정도 했던 정당활동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것 같아서 였는데... 그 전에 랜선을 뽑았어야 맞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평생 나가본 적 없던 파업 현장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혼자의 뻘쭘함없이 나가 앉을 수 있게 해 주지 않았던가. 그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의 기분(몇 번 나가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하는 무력감과...이 또한 그래도 나와보기나 했다는 자위에 그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기는 했으나... 일상활동은 사실상 친목모임에 그치고 있지 않나 하던 회의도 나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린 문제였으니 또한 얼마나 오만하고 부끄러운 것인가. 정당 활동으로 얻어낼 수 있는 최대치는 '복지국가'일 뿐이라는 판단. 그러니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 또한...얼마나 게으르고 안이한가. 그렇다면 그 이상을. '직접 느끼고, 느낀 만큼 행동'할 내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다만 방구석에서 인터넷이나 하고있지않은가.(판단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말이 아닌 스스로의 삶으로 믿는대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
'변죽을 울리면서 어쨌건 내가 뭘 하기는 하고 있다는 수신호만 타전하며 그럭저럭 연명'.
뼈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