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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 4주차에 들어서며

그림이야기학교 학생이 되고 3주. 지나고 4주차.


1주차 첫 과제는 다음주까지 대략 '자기소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10p 내외의 만화를 그리는 것. 이었고

2주차 두번째 과제는 다음주까지 대략 '기억' 정도의 키워드로 200p를 만화로 채우는 것. 원칙은 절대 이미 그린 앞장을 수정하지 않기. 스케치나 콘티등 사전 작업 없이 바로 실작업으로 진행할 것.이었고

3주차는 두번째 과제 기한 연장.이었다.


1주차에는 8p를 그렸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머리 싸매거나 멍때린 날이 반이었고 나머지 반에 스케치 상태로만 완결했다.

많이 그리셨으니;; 이건 여기서 종료하고 먹선작업등 완성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다음 과제를 내주심.

그림 빡빡하게 그릴 필요 없고 편하게 쭉쭉 풀어보라고.

결과물의 인상은 주류만화의 연출기법, 언어에 너무 익숙해 보인다. 젖어있다.

그림은 잘 그린다. 그런데 역시 주류만화의 스타일이다. 스타일을 좀 고민해 보면 어떨까.

풀어내는 것 자체에 겁 먹고 있음이 (당연히)드러났다. 막혀있는. 이야기가 만화로 풀려나오는 게 아니라 머뭇거리기만 하는.


2주차에는 바로 시작했지만 28p까지 밖에 못그렸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팅을 못하게되어 다음주까지는 200p 다 채우기로 연장되었다.

한 두페이지. 정도씩 단상만 던져지고 이야기가 길게 풀어지지 않아 갑갑했다. 단상의 연속을 재료와 스타일을 바꿔가며(나름 탐색이었다. 뭐가 편한가..길게 편하게 계속 쓸 도구는) 이어가자니 꽤 힘들었다. 역시 이야기가 풀려나오지 못하는...어떤 단편적 장면, 생각의 뭉치가 배열되지 못하고 그저 던져질 뿐인.


3주차에는 열심히 그렸지만 90p까지 채우는 데서 그쳤다. 나름 1주차에 8p-2주차에 28p-3주차에 62p로 해낸 분량이 늘었고 겁이 훨씬 덜 나게 되었다는 점으로 자위하며 새만화책 사무실로. 하지만 여전히 이야기가 풀려나오지 못하는 답답함. 과정 내내 변비같은 기분이었다.(육체적으로는 잘 쌌다.)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는 1주차와 대동소이. 주류만화문법에 너무 익숙한 것과 그림은 굉장히 잘 그리는데...이렇게 그려서 이 분량 하시려면 힘들었겠소;;;....

중요한 포인트는 관념적임.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풀어지지 못한다. 풀어낼 만한 부분에서 급하게 글(관념적인 어휘들로...)로 설명함으로써 마무리지어버린다. 사건을 보여주거나 이야기 하지 못하고 관념적인 개념어의 파편만 던져지는 셈.

작업하는 중에 느꼈던 답답함을 딱 짚어주는 말이었다. 스스로도 느꼈지만 대화를 나누니 더 확실하게 자각되었다. 


그리하야

다음 과제도 200p. 주어진 원칙은 

그림은 최대한 가볍게(기법 난이도/쏟아야 할 공력에서)하고 철저히 이야기에 복무하게.

실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때 처럼.

권고사항은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소설 읽어보기. 문체를 느껴보기.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만화 그리기란 소설 쓰기와 같다.


과제를 받아들고 당일은 토요일 오후엔 이어진 야작과 전날의 철야로 두통까지 좀 와서 조금 버텨보려다 잤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오늘...아.. 날짜 넘어갔구나. 어제 일요일엔 소설을 좀 읽으려다 책상 바로 옆에 있던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 스토리텔링과 비주얼 내러티브'가 눈에 뜨여서 다시 읽었다. 그러고 또 다른 책을 읽다가 잠들어서 푹~~ 자고 깨니 저녁. 서방이랑 삼겹살 사먹고(서방은 건강관리차 금육중이고 나도 덩달아 금육중이었는데 뭐...난 안먹으니 고기 생각 안나는데 아프리카로 예능프로 보던 서방이 급땡겨서 괴로워 하여...ㅋ...둘이서 딱 2인분만 먹고 왔다. 이럴 땐 먹어주는 것이 낫다. 급 땡겼는데 먹으니 별루다...를 체험하게 되니.-담배와 커피엔 적용이 안된다...ㅠ,.ㅠ) 돌아와 하염없이 멍때리다가 홈피에 이렇게 주절대고 있다.


멍 때리면서 나란 사람이 ... 감정이나 경험을 처리하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관념적이고 선호하는 언어도 모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에 대해서, 현재는 어떤 반작용으로 아주 명료하고 건조한 글을 동경하고 좋아하는데 원래 성향은 함축되고 여러가지로 읽힐 수 있는 모호한... 시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의미가 함축되면서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지향해야겠다...는 생각. 우선은 생생하고 구체적인.에 방점을 찍고. 함축은 지금은 버릴 것. 이라는 생각.

내 사고의 폭이나 질이란 것이 함축을 욕심내기에는 일천한 것이어서 지금 그러는 것은 겉모양만 흉내내어, 잘 모르는/스스로도 의심하는 바를 모호함으로 치장해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은폐시도. 일천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효과없는 시도.

또 작업하면서... 평소에 '~라는 것은...~것이다.'류의 표현을 남발한다는 점도 깨달음. 아무 생각없이 쓰면 막 계속 그렇게 쓴다. 지금 이 글에도 '~것'은 는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의식하고 계속 백스페이스 키를 연타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과제의 키워드가 '기억' 이었는데, 기억을 떠올려보면 추상적인 단어들의 집합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이 '감정이나 경험을 처리하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관념적'.이라는 판단의 단서랄까. 생생한 장면이나 대화 내용, 그때의 분위기나 상대방의 표정. 그때 환경의 모습 등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덮어쓰기해버린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복구해보려 애쓰는 기분이랄까...참 안떠오른다. 그만큼 살면서 복기를 자주했는데 구체적으로 복기한게 아니라 내 감정 중심으로 추상적인 판단 내지는 판결문을 덮어써왔던 게 아닌가...싶다. 사실 입말로 그냥 대화할때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항상 어렵다. 시시콜콜 장광설을 늘어놓게 되거나 뜬금없는 외마디를 지르거나. 대화는 언제나 어려웠고 어렵다. 혼잣말을 많이 하고 글도 혼잣말처럼 쓴다. 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축복받은 존재는 결코 아닌 것이다.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할 아이에 가깝다.

이제부터라도 구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할까? 뭐...노력해 볼 수는 있겠다.

요태까지 그래와타고 꼭 아페로도 게소크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바꾸면 바뀌니까.

추상적인 생각, 관념을 설명하는 게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생생하게.


하여간 무엇도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데, 4주차 작업에서는 그 추상적인 단어의 집합들을 구체적인 사건과 대화로 재구성해내야 한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풀어보자. 제발. 훌륭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어도 되지만 분명히 '이야기'해 내야 한다.

스토리텔링.


다시 읽은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 스토리텔링과 비주얼 내러티브' 도입부에서 따 옮겨놓는 말씀.

스토리가 구성되기 전 그것은 추상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머리에서 떠다니며 구성되기를 고대하는 수많은 생각들, 기억들, 환영들, 그리고 아이디어 들이다.

체계적으로 배열되고, 또 합목적인 질서로 진술되는 순간 그것은 어떤 이야기로 탄생 한다.

서사의 기본적인 원리들은 구술로 진술되든 영상으로 진술되든지 간에 동일성을 갖는다.

이 또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

소설/시나리오/만화 작법서 독서량은 꽤 많다는 게 오히려 부끄럽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기본적인 충고들은 많이, 자주 읽어서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는데 왜 못할까. 암만 가르쳐줘도 해보지를 않으니 배울 수가 없었던게지...쯧쯧.

작법책 수집/읽기 따위는 이제 그만;;; 배우고 익히는 방법은 습작. 많이 쓰고 많이 그리기. 오직 한 가지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체계적으로 배열'되지 못했고, '합목적적인 질서로 진술'되지도 않았다.

스토리 이전의 단계, '구성'되지 않은 '수많은 생각들, 기억들, 환영들, 아이디어들'을 그대로 던져놓았을 뿐이다.


이번에는 '구성'된 '이야기'를 해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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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젠장..무슨 이야기를 하지?.......

부터

ㅎㅎ

아무래도...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궁리를 해보면...뭐랄까;; 음울하다.

편안하게 조근댈 꺼리는 안떠오르고 질퍽질퍽하고(감정적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심각하기만 한 꺼리만...;;;

질퍽질퍽한 꺼리를 편안하게 조근대면? 가능해?

;ㅂ;

인간이 음침해...하아...orz....

하여간 콘티는 안짜더라도 전체적인 구성은 잡아놓고 작업을 시작하는 게 맞다 싶다. 막무가내로 바로 하니까 이야기 이전의 조각들 밖에 안나오더라. 이번에는 전체가 이어지는 한 덩어리로 보이도록...이라는 주문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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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화책'은 스콧 맥클루드의 '여섯단계'이론(만화의 이해 170p부터 | 1. 개념/목적, 2. 형식, 3.작풍, 4.구조, 5.기능, 6.겉모습 )으로 말하자면 '1. 개념 목적'에 촛점을 두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거지요. 자기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삶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것인가?

그리고.../ 내가 얘기할 뭔가를 가지고나 있을까?

제 생각엔 우리 모두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실제 문제는 '세상이 들어줄 것인가?'지요. 불행히도 그걸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만화의 이해 186p


삶을 이야기하기.

연출, 작화 스타일 등은 모두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에 충실하게 복무해야 한다.

나는 이 지향에 동의하고 내가 하고싶은 것도 이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풋내기답게 겉모습과 기능(테크닉)에 대한 미련이 솔직히 있다. 펼쳐보지도 못했거든. ㅎㅎ

그러니까 동의하면서도 한구석...그림도 멋지게 그렸으면 좋겠는데...하는 욕심이 계속 올라온다. 그래서 일주일에 200p라는 분량을 제시하는 듯. 이런 상태를 알아 보고.

일주일에 200p를 하려면 그런부분은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것이지 멋드러진 이미지를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6에서 1로 거슬러 오르는 여정을 꾸준히 걸어왔다면 없을 미련이다. 나는 6,5에서 전진을 멈추고 1을 관념적으로 고민해온듯 하다. 여전히 6,5에서부터 부족하니 수련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거기 머물렀다.

지금 보니...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뽑아낼 기술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 충분한 시간...이 꽤 기니까 밥벌어 먹고 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ㅋ 만화기술자로 스토리 받아서 작업하는 거라면 지금도 가능하겠다 싶다. 나는 작가가 되고싶지 만화기술자가 되고싶은 것이 아니니까 별 의미는 없지만서도.

하여간 지금까지는 내내 기술부터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는데...왜 그랬을까?


이제는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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