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 edit | delete

2010.03.21 | 빨간불

많지 않은 채워진 종이와 많은 빈 종이를 앞에두고

동쪽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오솔한 새벽에 겹쳐입었던 가디건을 한꺼풀 벗고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재생해내고 끌어내려고 인상을 쓰다

뻐근한 눈, 지끈한 머리, 저려오는 팔다리. 자야한다는 몸의 명령에 따라

이를 닦고 혀를 닦다가 헛구역질을 하는데 이게 늘 하던 헛구역질이 아니라 위 속 내용물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가는게라

잠시 숨을 고르고 콧구멍을 벌름거려보다가(스펀지에서 벌름거리며 혀닦으면 안쏠린다 그랬다) 이미 쏠린 이후엔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해야하는데 역시 귀찮아 담배쩐내 간직한 머리카락을 그대로 베게에 비비며 눈을 감았다. 아침 10시 쯤.

으으으~ 소리 내며 눈을 떴다. 저녁 10시 쯤.

아이고 큰일났다. 묵직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가 변기에 앉고보니 온통 불그죽죽한 것이 어우 조금 놀라

그랬구먼. 생리 터지는 날엔 도저히 못일어나고 오랜시간 몸이 셧다운되는 증상이 있는데(생휴없는 직장생활의 훈훈한 애로사항이었지. 왕지각이나 결근으로 이어진.) 컨디션이 나쁠 때는 심해지고 좋을때는 덜하다. 12시간 기록인걸로 봐선 최고 기록은 아니고 중간치 쯤 된다. 컨디션이 최악은 아니고 중간쯤 나쁘다는 유추가 가능하다.(최고기록은 24시간 쯤이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고마운 인연으로 받던 신기하고 고마운 치료를 어찌어찌 중단하고 한달 쯤 낮밤이 뒤집힌 생활을 하면서 나빠지고 있음을 느끼고는 있었는데 아무래도 심야에 작업이 그나마 풀린다싶어 그냥저냥 그렇게 살다가

최근 열흘 정도부터 심상치 않은 두통이 시작되었고 감기기운이려나 했지만 아무래도 역시 지병인 뵨(본)태성고혈압 악화의 신호이지 싶어 어우 조금 후덜덜. 두통 안느낄 때도 키를 나타내는 cm앞 숫자랑 비슷한 수치였는데 이런 두통을 느끼려면 이게 숫자가 어찌되는 걸까싶으니 후덜덜.

일단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려고 시도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작업을 시작한 것은 좋은 일이고 문제는 작업하면서의 생활습관이 안좋은 것이니 그걸 고쳐서 건강회복을 꾀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역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드리며 하다가

아이고 큰일났다. 낮에 새만화책 가서 얘기하고 작업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는데 그 날이 저물고야 깨었으니 이를 어쩐다.

전날에 전화해 과제 작업이 지지부진해서-저번의 파편적인 결과물 때문에 어느정도 구성을 짜놓고 들어가야겠다 한것이 기억만 헤집다 늘어져버린 것이지- 한 주 연장을 요청했다가 그런 이유로는 불가. 그러다가는 내내 못하게 되니. 구성하고 들어가는 '작품'하라는 것이 아닌데 잘못 갔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그냥 하는 걸로 시작해서 내일은 어떻든 가져와서 만나고 여기서 작업을 하라.꾸중을 듣고 그러겠습니다 다짐하고 전화를 끊고 다음날 아침까지 작업하다가 위의 과정을 밟아나갔던 것인지라.

약속을 했는데 펑크를 낸것이고 연락도 못한 것이고. 이를 어쩌나.

근데 어제 그렇게 통화하고 오늘 그랬으니 몸이 셧다운되어 버렸다. 생리 터지는 날엔 원래 이런다. 라고 해명한다는 게 뭔가 구라같고 구차한듯 하여. 소심하게 끙끙 고민을 한다.

하여간 전화는 무섭단말이지. 이게 전화공포증인지 대인대화공포증인지 아마도 후자. 일방전달이 아닌 주고받는 올게 뭔지 예측할 수 없는. 그런거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프던 머리가 더 아파온다.

다음주에 과제를 완수해 만나고 얘기하면 된다 싶다가도. 아이고 또 그렇게 대충 도망갈래? 구차하든 아니든 지금 연락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맞다. 지금은 새벽이니까 말고. 아니지 깨었을 때 지금은 밤이니까하며 미뤘던 게 생각나는 군. 아이고...구제불능. 한다.

생활습관 교정도 할 겸 새만화책 사무실 구석에 자리있으면 좀 내주십사. 작업실 출퇴근 식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해볼까. 밤에 말고 낮에 카페같은데로 나가서 작업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과연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무실 기생은 아무래도 민폐같기도 해서. 우선 카페등지에서 시도해보고 영 안되면 부탁을 해볼까. 이런 궁리를 한다. 하여간 연락을 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서 사무실기생부탁이든 카페에서의 시도든 해야하는데.

건강에도 빨간불이지만 어제의 무연락펑크 빨간불이 더 위중한 빨간불인데 이런쪽에서는 언제나 쩔쩔. 도망만가고싶은게 나란 캐릭터라 큰일이다.

다시 아침이고 몸은 슬슬 자라고 속삭이기 시작하는데

대체 전화란 것은 몇시쯤에 해야 폐가 안되고 적당하단 말인가? 평생의 궁금증이다.

write | edit | delete
|

Valid XHTML 1.0 Transitional

Valid CSS Transitio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