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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 신호 전환

합정역에서 양재역까지 지하철로 가는 여정은 꽤 길다.

토요일 2시에 합정역에서 양재역으로 갈때는 앉아서 갈 수 있지만 4시쯤 양재역에서 합정역으로 돌아올때는 승객이 많아 힘들다.

그러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매번 밤에 작업을하다 가서 앉아서 책을 펼쳤다가 이내 잠들어 교대역에서 퍼뜩 깨어 갈아타니 차라리 순간이동에 가깝게 느껴졌지. 돌아올때는 그렇지 않았지만...ㅎ 역시 몽롱한 상태여선지 그닥 힘들거나 하지도 않았고...

어제는 또 밤에 작업하다가 행사 마치고 새벽 3시에나 돌아온 서방과 아침까지 한잔 하다가 취해서 자고 일어나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으면서 이 토요일의 작은여행에 임하였더니 잠들지 않았지만 역시 순간이동에 가깝게 느껴졌다. 역시 돌아올때는 그렇지 않았지만...ㅎ 여전히 몰입해서 읽었지만 숙취도 남아있는지라 사람많은데 서 있으니 힘들었다. 몸은 힘들어도 의식이 맑은 상태에서 오간것은 이번이 처음인듯한데 그랬더니 아아 길구나 싶어졌다.

그리고 생활습관/작업습관 바로잡아 몸에 익히기 가안 중 새만화책 사무실 한귀퉁이 더부살이 안은 삭제되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괜찮지만 매일 출퇴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회사다닐때도 저쪽동네로 출퇴근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싫었던가... 나중에는 저쪽동네 아닌 회사에 무조건 지원하게 되었을 정도로....

토요일의 작은 여행은 괜찮지만 매일의 출근은 안되겠다.

합정동 벼라별씨나 홍대앞 룰루랄라 같은 카페로 출근을 해볼까. 가깝고. 의외로 편안할지도 몰라. 몇 시간이나 뭉갤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서 해보면 알겠지.


처음엔 한동한 이별했다 다시 만난 밤시간이 황혼에서 새벽까지 여전히 내게 친절하였으므로 좋았는데...

한달정도 밤낮이 뒤집힌 생활을 했더니 몸이 훅가는게 심하게 느껴진다.

밤에 시작한 작업은 해가 뜨면 끊긴다.

해를 보지못하고 살면 우울해지고 둔해진다.

절제해야 하는 감정은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고양해야 하는 감각과 사고는 치명적으로 둔화된다.

밤. 아직 아침이 오지않은 새벽의 공기. 조근조근 말하는 심야라디오. 떨어진 담배를 구하러 잠바를 껴입고 종종걸음으로 큰 길로 나가 신호등 전환 버튼을 누르고 편의점에서 목적을 달성한 뒤 다시 신호등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올라오는 골목길에서 저 인간들은 대체 언제 쉬는거냐 365일 24시간 일해? 그 시간에도 불이 켜져있는 디자인 사무실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며 매번 조금 소스라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뭐 그것도 나름의 감성이 되어줄 수도 있을테지만 평생 없던 만성두통이 생겨버리면 말짱 헛거라는 얘기다.


몸이 내게 하는 말에는 대답해줘야한다.

무시했던가?

안들리는 척 했던가?

못들었던가?


몸이 말하기를...아프다고.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가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찰하라고 나가서 바람을 느끼고 흙을 만지고 풀내음을 맡으라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만들어달라고

매일의 일과를 혼자만의 작은 방에 유폐시키지 말아달라고

햇빛아래 깨어난 감각으로 잃어버린 타고난 호기심을 되찾아 달라고

나는 충분히 사랑스러운데 너만 그것을 모르는 척 한다고.


그러자 그래.

-

그런의미에서 나는 오늘 잔차를 한대 질러야만 하겠다.

그리고 신나게 타주셔야만 되겠다.

(응?)

-

한달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내기위해 기억을 헤집는 작업을 해오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하면서도 그 질문을 계속 외면하거나 회피. 직면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순간 한마디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짧은 언어로 설명...아니 변명하려는 방식으로.

여전히 아직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서양사람과 달리 동양사람은 대체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내가 그러한 사회속에서 자라고 만들어져 왔다지만 그런 사실은 한계가 아니라 극복할 점으로 어쩌면 그러하므로 열리는 다른 지평을 기대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이를테면 '나 자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관심을 놓으려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쳐왔으나 조금은 뒤틀린 무관심의 가장이나 스스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단단히 내면화해버린다든가 권장되는 자아상을 연기하는 자신과 그것을 경멸하고 비하하면서도 알리바이성 변명을 온라인에 쏟아내는 자신의 분열상...같은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을거다.

그런 작업을 해내려면 나는 또 나를 관찰해내야 하는데 밀착해 들여다보고 멀찌감치서 배경과 함께 보고 또는 관계에서 드러나는 행동만을 분석하기도 해야하는데 ...

그 작업을 회피해왔던 것 같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풀어내야 할 기억들을...마치 선언이나 판결문같은 현시점의 판단을 써버리는 것으로 조급하게 마무리지어버렸다거나... 관념적인 수준에서 단정할 수 없는,판정할 수 없는 기억들은 피해가려고 했다거나...이런저런 식으로.


나 자신을 직면하는 일을 해낼 수 있어야

관계로 사회로 파고드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적당히 재미를 가공하는 기술자가 아닌 한조각이라도 진실을 담은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이고자한다면.


제대로 나를 만나기부터...
똑바로 볼 수 있게 되기부터.

선택적으로 외면하고 보고싶은 것만 보고싶은 대로 보는 눈은 뽑아내어 우걱우걱.

똑바로 볼 수 있는 새 눈이 돋아 나게.

시작은 자신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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